오늘 뉴스에 아침부터 송민서와 기욤패트리에 관련된 내용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건 바로 둘의 교제가 끝났다는 이야기 이고, 그에 대한 단서로 둘의 페이스북 상태를 거론하기도 했다. 이에 대한 반응도 다양하다. 이용했다느니, 결혼할 줄 알았다느니, 기타등등의 여러 반응들이 엇갈리게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별의 주인공인 기욤패트리 아마도 요즘에 그를 접했던 사람이라면 단순히 비정상회담이라는 예능프로그램에 출현했던 캐나다에서 온 외국인이자 우리나라 여자 연애인 송민서와 교제를 한 주인공이라고만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2000년쯤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즐겼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를 알고 있을 것이다. Grrrrrrrr이라는 게임 아이디를 사용했던 그는, 현재의 E-Sport를 존재하게 만들었던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에서 한시대를 풍미했던 프로게이머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2000년도전후 당시 프로게이머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준 사람으로 세사람을 뽑을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가 쌈장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했던 1세대 프로게이머 이기석, 그리고 E-SPORT의 부흥기를 이끈 주인공 슬레이어박스의 임요환, 그리고 마지막이 Grrrrrrr라는 아이디를 사용했던 캐나다에서 온 남자 기욤 패트리다.
기욤이 스타크래프트에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 건 비교적 이른 1998년도이다. 이때부터 각종 대회를 휩쓸고 다녔었는데, 당시에 기욤이 즐겨하던 종족은 저그였다. 주로 사용하던 전략은 히드라리스크 웨이브로 당시 베틀넷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 기욤과 더불어 세계최강이라 손꼽히던 게이머로 톰 캐드웰이라는 유저가 있었는데 이 둘의 대결에서도 기욤이 압승을 할정도로 그의 실력은 당시 최고였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는 이때까지 스타가 그렇게 보편화된 게임은 아니였고, 막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스타가 본격적으로 부흥하기 시작한 건 스타크래프트의 확장팩인 브루드워가 나오면서이다. 그리고 브루드워가 나오면서 기욤은 저그에서 랜덤으로 전환하였다.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흥행하기 시작한 1999년도에는 스타라는 게임은 우리나라의 하나의 문화아이콘이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 배틀넷 래더 상위 100위권 중 우리나라의 유저가 64명에 달할정도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러나, 1999년 브르드워 래더 토너먼트 시즌 1에서 래더 1위는 우리나라 유저가 아닌 바로 기욤패트리였다. 그리고 그의 이런 독주는 4개월 이상 지속되었다. 그러나 시즌 2에서는 어뷰저 유저들에게 밀려 순위권 조차 들지 못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시즌 2의 우승자였던 이기석이 어뷰저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그로인해 스타를 즐기는 유저들 사이에서 래더 토너먼트에 대해 불신과 논란이 한층 가열되었다.
이 사건 이후 블리자드는 래더 토너먼트를 즉시 종료하였으며, 최후로 진정한 세계최강을 가리는 월드 챔피언십을 개최하였다. 그리고 이 대회에서 기욤은 한국의 김창선을 3:0으로 꺽고 우승을 함으로서 블리자드가 인증한 유일한 세계최강의 자리에 등극하게 된다.
2000년에 이르러서는 전세계적으로 스타의 열기가 식어갔지만, 반대로 우리나라는 스타에 대한 열기가 더 뜨거워지고 있었다. 이로인해 기욤은 지속적인 스타 프로게이머 활동을 위해 한국으로 오게 되었다.
그리고, 그해에 하나로통신배 투니버스 스타리그에서 기욤은 전 시즌 리그 준우승자였던 국기봉을 상대로 승리를 하여 이 대회에서 우승하게 된다. 우리나라 스타리그에서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 최초로 우승을 거머쥔 대회이기도 했다.
이로인해, 당시 한국에 왔었던 몇몇의 해외 프로게이머들과는 다른 이미지를 심어주게 되기도 하였다. 대부분 예선전에서 탈락하는 등의 저조한 경기력을 보여준 반면 기욤은 기발한 전략과 창의성으로 실력을 입증함으로써 한국 프로게이머들과는 다른 경기전략으로 신선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2000년 말에 있었던 온게임넷 스타리그 FINAL2000에서 우승하며 한국에서의 리그에서도 그가 최강의 게이머라는 사실 또한 입증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쇠퇴는 비교적 빠르게 왔다. 2001년 부터는 그렇게 크게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였다, 비교적 국내 선수보다 손의 속도나 콘트롤이 떨어지는 상태에서 그가 취했던 전략마저 어느 정도 국내 선수들에게 간파당한 상태라 더이상 그의 기발함이 통하질 않았다. 그리고, 힘대결에서는 국내선수들에게는 많이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임요환 선수와 있었던 최강자 대결에서 또한 3:0으로 완파당하며, 예전의 명성을 회복하지는 못하였다. 2003년 WCG에서 3위를 차지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프로게이머로서 그의 커다란 무대는 그렇게 끝났다. 그 후 2004년에 완전히 은퇴하였다.
이런 기욤의 이력을 볼때 결과적으로는 1세대 프로게이머의 본좌라 평가되어진다. 스타크래프트 오리지널부터 부르드워까지의 1998년에서 ~2000년까지는 거의 그의 독무대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보여주며 그시대를 풍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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